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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스윔

여물지 않은 소나기가 익으면지구는 알맞게 뜨거워진다​그런 시절에는 유독 가난했다​몹시 건조해지는 눈물샘은우물같은 슬픔이 고이고너는 너 없이 지내본적이 있니​라는 심정으로깍지같은 손을 놓아야 했다​손이 있는데 손을 잃은 오른손은지문없는 말을 지어내고​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대도 너는 떠날거지​이런 가여운 질문에대답않고 흐느끼는 시냇물에첨벙첨벙어푸어푸퐁당퐁당밤을새워 수몰된 우리네 마음

신철규, 눈물의 중력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바닥 모를 슬픔이 너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 안으로 말아 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문정희, 비망록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기도를 하고밤이면 고요히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아득히 먼 춤

우리는 모두 평생 닿을 일 없이 각자의 궤도를 떠도는 별들이다 별과 별사이 수억광년의 거리 속삭이듯 말해서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온몸으로 춤을 춘다 그 별은 당신에겐 아직 판독불가의 전파에 불과하겠지만 언젠가 당신의 안테나 닿기를 바라며 춤을 춘다 《KBS 드라마 스페셜 2016》 시리즈 중 아홉 번째, 아득히 먼 춤, 신파랑의 편지 中

이애경,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이별이 아픈 이유는 우연히라도 너와 더 이상 마주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내 삶의 반경이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너에게 가는 데 익숙했던 발걸음을 다잡고 익숙한 거리를 피해 애써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하는건 마치 관성을 거스르듯 자연의 법칙을 깨는 일이라 몇 배의 힘과 노력을 요하는 서툰 작업. 쓰지 않던 마음의 근육을 써서 너에게로 가려는 마음을 제자리로 당겨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애경 에세이,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