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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네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가 떠 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 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마다 너를 찾아와 안부를 물어. 있잖아, 잘 있어? 너를 기다린다고, 네가 그립다고, 누군가는 너를 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네가 매정하다고 해. 날마다 하늘 해안 저편엔 콜라병에 담긴 너를 향한 음성 메일들이 밀려와 여기 하늘엔 스크랩된 네 사진도 있는걸. 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넌지 모르겠어. 누가 너니?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메일들이 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 누군가 열없이 너에게 고백하던 날이 지나가. 너의 포옹이 지나가. 겁이 난다는..

이상, 이런 시 / 전문

1.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걸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2.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 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돌을 업어 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3.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4.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 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이정하,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사랑했으므로 내 모든 것이 재만 남았더라도 사랑하지 않아 나무토막 그대로 있는 것보다는 낫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말이야 얼마나 그럴듯한가. 장작이야 원래 때라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은 손만 쬐고 훌쩍 일어서는 데야. 마음까지 데우지 못했던 내 화력을 탓해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해보았지만 그것은 또한 못내 억울한 일이었다. 언제까지 너는 눈부시고 나는 눈물겨워야 하는가. 대체 어디까지 끌고 가야하는지, 나는 버린다고 했지만 결코 버려지지 않는 내 삶의 숨결 같은 것이여. 머리말